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국도에서 불국사로 나가는 곳(불국사역 사거리)에 있다.
사적 제 27호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고분)이며 둘레에 12지신상 조각되어 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내부 실내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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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동 고분: 사적 제38호
봉황대, 금령총, 식리총이 남아 있다.
봉황대는 황남대총(98호)분보다 낮으나, 봉토의 지름 82m, 높이 22m의 거대한 고분이다.
그 남쪽에 1924년에 각각  발굴한 금령총이, 그 동쪽에는 식리총이 있다. 또 서쪽으로 길건너에는 노서동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황남동 고분군보다는 시기가 약간 뒤진 6세기경의 고분으로 추정되며 모두 신라의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노서동 고분군 :
사적 제39호
이곳에는 총 14기의 고분이 있다.
1921년 발굴된 금관총, 1926년 발굴된 서봉총, 1946년 발굴된 호우총, 1953년 발굴된 마총, 1963년 발굴된 쌍상총 등이 있다.
마총, 쌍상총 등은 통일신라 시대 초기에 새롭게 나타난  돌방무덤(석실분) 형식이다.

<노동동 고분 중 하나인 봉황대>


금관총

서봉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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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인용한 글 및 사진임을 밝힙니다.

삼릉계석불좌상의 보수 ․ 정비 후 모습 (정면)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2008년 12월 29일(월) 14:00 경주 남산 삼릉계석불좌상(三陵溪谷石佛坐像, 보물 제666호)에 대한 정비를 마무리하고 그 모습을 현장에서 공개하였다. 이 정비사업은 신라 불교문화의 보고인 경주 남산에 대한 정비사업의 하나로써, 2007년부터 경주시와 함께 진행해 왔다.삼릉계석불좌상은 8~9세기경에 만들어진 장대한 작품으로서, 일제강점기인 1923년과 근년에 정확한 고증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엉성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 결과, 불상의 안면은 콘크리트 몰탈로 적당히 보수 처리된 상태였으며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원광)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불상 뒤편으로 넘어져 크게 파손되었다. 원래 모습을 잃은 삼릉계석불좌상에 대한 보수와 안정적인 보존환경 조성이 시급하였다.
이에 따라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3월경 석불좌상이 위치한 주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불상이 원래 위치하였던 지점을 추정하고, 과학적 보존처리, 그리고 불교미술사 등 관련분야 전문가 자문을 통해 보수정비안 마련, 불두(佛頭) 안면의 턱 부분 및 깨진 광배(光背)를 보수함으로써, 드디어 삼릉계석불좌상 정비를 마치게 되었다.

삼릉계석불좌상의 보수 ․ 정비 후 모습 (안면)


삼릉계석불좌상의 보수 ․ 정비 전 모습

삼릉계석불좌상의 과거 모습(1910년대, 조선고적도보)



삼릉계석불좌상의 보수 ․ 정비 전 모습 (정면)


삼릉계석불좌상의 보수 ․ 정비 전 모습 (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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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에서 퍼왔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1권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동쪽으로는 울산군계(蔚山郡界)까지 61리, 장기현계(長鬐縣界)까지 83리, 남쪽으로는 언양현계(彦陽縣界)까지 62리, 서쪽으로는 청도군계(淸道郡界)까지 76리, 영천군계(永川郡界)까지 53리이며, 북쪽으로는 영일현계(迎日縣界)까지 3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7백 83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신라의 옛 수도이다. 한(漢) 나라 오봉(五鳳) 원년에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가 나라를 열고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서야벌(徐耶伐)이라고 하였으며 이 뒤로부터는 방언(方言)으로 왕경(王京)을 서야벌이라고 통칭하였다. 혹은 사라(斯羅)라고 하고, 혹은 사로(斯盧)라 하다가 뒤에 신라라 일컬었다.
탈해왕(脫解王) 때에 시림(始林)에 괴이한 닭의 일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계림(鷄林)이라 고치고 이를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하였는데, 기림왕(基臨王)이 다시 신라로 하였다.
고려 태조 18년에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가 와서 항복하니 나라는 없어지고 경주라 하였다. 뒤에 승격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가 되었으며, 성종(成宗) 때에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쳤다가 또 유수사(留守使)라 일컬고 영동도(嶺東道)에 예속시켰다.
현종(顯宗) 때에 강등(降等)시켜 경주 방어사(慶州防禦使)로 하고, 또 안동 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다가 다시 동경유수(東京留守)로 하였다. 그때 예방(銳方)이 올린 삼한회토기(三韓會土記)에 고려삼경(高麗三京)이라는 글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동경유수를 둔 것이다. 신종(神宗) 때에 동경야별초(東京夜別抄)가 반란을 일으켜 주(州)ㆍ군(郡)을 겁략(劫掠)하므로 사자를 보내어 평정하였다. 뒤에 동경 사람들이 신라가 다시 성한다는 말을 만들어 상(尙)ㆍ청(淸)ㆍ충(忠)ㆍ원주도(原州道)에 격문(檄文)을 전하고, 반란을 음모하였다. 이로 인하여 지경주사(知慶州事)로 강등하고, 관내의 주(州)ㆍ부(府)ㆍ군(郡)ㆍ현(縣)을 빼앗아 안동(安東)ㆍ상주(尙州)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高宗) 때에 다시 유수로 고치고, 충렬왕 때에 계림부(鷄林付)로 고쳤다.
본조에서는 태종조(太宗朝)에 경주라는 옛 이름을 다시 쓰고, 세조조(世祖朝)에 진(鎭)을 설치하였다.

【속현】

 안강현(安康縣)
부(付)의 북쪽 3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비화현(比火縣)이다. 경덕왕(景德王)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가 고려 현종(顯宗) 때에 예속되었다. 공양왕(恭讓王)이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본조에서는 태조조에 다시 경주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기계현(杞溪縣)
부의 북쪽 5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모혜현(芼兮縣)이며, 화계현(化鷄縣)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에 예속되었다.
자인현(慈仁縣)
부의 서쪽 63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노사화현(奴斯火縣)이며, 기화현(其火縣)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장산군(獐山郡)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고려 현종 때에 예속되었다.
신광현(神光縣)
부의 북쪽 5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동잉음현(東仍音縣)이며, 신을현(神乙縣)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의창군(義昌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뒤에 일어진(昵於鎭)이라고 일컬었다. 고려 태조 13년에 친히 거둥하여 성(城)을 쌓고 이름을 신광진(神光鎭)이라 고쳤다. 현종 때에 예속되었다.
구사부곡(仇史部曲)
부의 서쪽 6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마진양현(麻珍良縣)인데, 진(珍) 자는 미(彌) 자로도 썼다. 경덕왕이 여량현(餘粮縣)으로 고치고 장산군의 속현으로 하였다. 뒤에 부곡으로 강등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죽장부곡(竹長部曲)
본래 신라의 장진현(長鎭縣)이다. 고려 때에 부곡으로 강등하였다. 부의 북쪽 60리 청송부(靑松府)와 경계에 있다. 북안곡부곡(北安谷部曲)은 부의 서쪽 50리에 있는데, 영천부(永川府)의 동남촌(東南村)으로 넘어 들어갔다.

【진관】 군(郡)이 4 울산(蔚山)ㆍ양산(梁山)ㆍ영천(永川)ㆍ흥해(興海). 현(縣)이 6 청하(淸河)ㆍ영일(迎日)ㆍ장기(長鬐)ㆍ기장(機張)ㆍ동래(東萊)ㆍ언양(彦陽).

【관원】 부윤(府尹) 종이품(從二品)인데, 병마절제사를 겸임한다. 제도(諸道)ㆍ제진(諸鎭)이 같다. 판관(判官)ㆍ교수(敎授) 각 1인.

【군명】 진한(辰韓)ㆍ서야벌(徐耶伐)ㆍ사로(斯盧)ㆍ신라(新羅)ㆍ낙랑(樂浪)ㆍ계림(鷄林)ㆍ월성(月城)ㆍ동경(東京)ㆍ금오(金鰲)ㆍ문천(蚊川)

【성씨】
본부(本府)
박(朴)ㆍ석(昔)ㆍ김(金) 모두 신라의 종성(宗姓)이다.
이(李) 급량(及梁). 최(崔) 사량(沙梁). 정(鄭) 본피(本彼). 손(孫) 모량(牟梁). 배(裵) 한지(漢祗). 설(薛) 습비(習比). ○ 이상 6부(部)의 성(姓)은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에 내려준 것이다.
강(康) 동주(洞州). 설(偰) 회골(回鶻). 자세한 것은 인물(人物) 조에 나온다. 양(楊) 속성(續姓)이다.
안강(安康)
안(安)ㆍ노(盧)ㆍ김(金)ㆍ황(黃)ㆍ염(廉), 소(邵)ㆍ변(邊) 모두 당성(唐姓)이다. 윤(尹) 송생(松生).
기계(杞溪)
 유(兪)ㆍ양(楊), 익(益) 맹(孟)이라 하기도 한다. 윤(尹), 김(金) 김해(金海).
자인(慈仁)
박(朴)ㆍ한(韓)ㆍ정(鄭)ㆍ주(周), 임(任) 진도(珍島). 변(邊) 가은(加恩).
신광(神光)
서(徐)ㆍ진(陳)ㆍ윤(尹)ㆍ신(申) 구사(仇史) 정(鄭)ㆍ석(石)ㆍ조(曹), 전(全) 장산(章山).
죽장(竹長)
갈(葛) 속성(續姓)이다. 이(李)ㆍ김(金)ㆍ송(宋) 모두 내성(來姓)이다.
성법이(省法伊)
 김(金)ㆍ최(崔) 모두 속성(續姓)이다.
비안곡(比安谷)
이(李)ㆍ송(宋)ㆍ갈(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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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 주변에 있는 꽤 크고 유명한 식당입니다.  대릉원 주변에는 규모가 큰 쌈밥집이 여럿 있습니다.
처음 생길 때보다는 맛이나 성의가 좀 부족해진 듯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입구에 놓여있는 많은 민속품들은 혹시 애들이라도 데려가면 좋은 구경거리가 됩니다.
경주쪽 음식이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잇습니다.  또 많은 손님을 맞이하느라 미리 준비하여 식은 반찬이 나와 실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집에 대해 꼼꼼히 품평을 내린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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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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