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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5 경주 양동마을 1

경주 양동마을 1

여행 2010. 3. 5. 17:51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여주 이씨) 종가가 자리잡은 500여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반촌(양반동네)로 우리나라 최대의 동성부락이기도 하다.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1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54호의 고색찬연한 고기와집과 110여호의 초가집 등 많은 고건축물이 남아 있다.
마을의 입지는 풍수지리의 물(勿)자 형국으로 양반 가옥은 네개의 산 줄기 위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양동마을에는 국보 1점(통감속편), 보물 4점을 비롯해 총 24점의 문화재가 있다.
민속마을처럼 영화찍기가 좋아서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혈의 누>, <스캔들>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합니다.


관가정에서 마을 회관 쪽으로 내려다 본 사진

관가정
조선 성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 손중돈이 지은 건물로 보물 442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가정(觀稼亭)은 양동마을의 왼편 전망이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아 있으며 집 이름 '농사짓는 것을 바라보는 정자'에 걸맞게 넓은 안강평야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건물의 기본구조는 사랑채와 안채·행랑채가 'ㅁ'자형 좌우측에 날개를 단 모습으로 되어 있고, 그 뒤편 동북쪽에 별도로 일곽을 이룬 사당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관가정은 1514년에 건립되어 오랫동안 손씨 문중 종택으로 내려오다 20세기 초에 원래의 종택인 서백당으로 대종가가을 옮긴 뒤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향단
보물 412호.
경주 양동 마을의 향단은 회재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중종임금이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도록 지어준 집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여(與)자 모양으로 붙인 독특한 형태의 집입니다. 원래 99칸이었다가 일부 소실되고 현재 50여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간 날은 마침 문을 닫아두어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네요.

향단에서 내려와 무첨당으로 가는 길에서 본 담장
기와 담장과 솔잎 담장이 한 집에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무첨당
보물 411호로 1543년에 지은 집으로 회재 이언적의 부친께서 사시던 집이라고 하네요.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맏손자분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현재 후손이 살고 있어 자가용이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좌해금서 현판은 흥선 대원군의 친필이고(영남의 풍류와 학문이란 뜻)
물애서옥 현판은 중국사신 조광이 쓴 글이라고 합니다. (양동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뜻)


대성헌
18세기 전반(영조때)에 건립된 건물로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입니다.
대성헌이라 이름 지은 것은 성주봉을 마주본다는 뜻이랍니다.

역시 양동 마을에 있는 집입니다.

경산서당
1835년 양동마을의 이웃 안계리에 건립되어 회재 이언적 선생의 맏손자인 무첨당 이의윤 공을 봉향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인데 1970년 댐이 건설되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동마을에는 원래 이 마을에 있던 강학당과 함께 두개의 서당 건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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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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