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7.28 7월초 창덕궁 답사 사진
지난 7월초 직장 동료들과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찾았던 창덕궁 사진 몇장이다.
미놀타 303si와 24-105렌즈,  필름 센츄리아 100과 미츠비시 mx100의 결과물이다.
비오는 날 감도 100의 필름으로 그것도 삼각대 없이 우산 쓰고 사진 찍는 무모한 모헙의 결과물답게 사진이 흐릿하다.

창덕궁 사적 제 122호
태종이 즉위한 후 이궁으로 짓기 시작하여 1412년 완공하였다. 임진왜란때 불에 탄 후 광해군때 중건이 끝났으나 다시 화재로 불타 인조때인 1647에 완전 복구되었다. 마지막 임금인 순종 황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궁궐중에서 가장 옛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건축물을 본따 직사각형으로 밋밋하게 늘어선 경복궁보다 산줄기를 따라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휘어지며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더욱 정감 깊다.
여러 건축물이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돈화문 (보물 제 383호)
 창덕궁의 정문이다
 선조 때 중건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2층) 우진각 지붕집이다.
 5칸으로 되어 있으나 살제 문으로 이용되는 것은 가운데 3칸이며 양 옆의 2칸은 벽으로 막았다. (황제의 문은 5칸이요, 제후의 문은 3칸이니 황제의 문인가, 제후의 문인가?)
직접 보면 훨씬 더 운치있는 문인데 사진을 잘못 찍어 모양이 사납게 되었다.
돈화문에는 종과 북을 매달아 정오와 인정(밤 10시경, 통행금지시간) 때에 종을 울리고 파루(새벽 4시경 통행금지 해제) 때에 북을 쳤다고 하는데 남아있지 않다.
돈화문은 왕이 드나들던 문으로 신하들은 평소 남쪽의 금호문으로 출입하였고 북쪽의 경추문은 군사를 동원할 때에만 개방하였다 한다.

진선문
창덕궁의 중문으로 1908년 허물었던 것을 1999년 복원하였다.


돈화문의 잡상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으로 국보 225호이다. 
 용마루에는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장식되어 있다.

희정당(보물 815호) 편전으로 이용되었다.

대조전(보물 816호) 내전, 침전이다. 용마루가 없다. 사진은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낙선재
원래 상중에 있던 왕후들이 소복으로 머물던 곳이라 단청을 하지 않았다 한다.
영친왕이 귀국한 뒤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이다.

부용지, 어수문, 주합루
 부용은 연꽃을 말하며, 어수문의 어수 곧 물과 고기는 왕과 신하를 비유한 말이라 한다.
 왕은 어수문으로 출입하고 신하들은 옆의 작은 문으로 출입하엿다.
 주합루는 규장각으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부용지, 부용정
 열십자 모양의 정자로,  왕이 과거급제자에게 주연을 베풀고 때로 낚사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초가지붕의 청의정
정자앞에 벼가 자라고 있다.

태극정

옥류천

600년 묵은 다래나무

연경당 앞의 불로문

연경당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의 꽃  (0) 2009.07.28
아파트 주변의 산딸기  (0) 2009.07.28
미놀타 디미지 A1  (0) 2009.07.28
미놀타 3총사  (2) 2009.06.28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후 시청주변 풍경  (0) 2009.06.28
Posted by 상운(祥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