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영】
견수모동대(犬首侔東岱)
이규보(李奎報)의 삼백운(三百韻) 시에, “견수산(犬首山)은 동대(東垈)와 같고, 문천(蚊川)은 좌이(左伊)를 모방하였다.” 하였다.

계림진골고무다(鷄林眞骨固無多)
고려 김군수(金君綏)의 시에,
                    “나는 무열왕의 후손인 문렬(文烈)의 가문으로
                     계림의 진골(眞骨)은 본시 많지 않네.
                     옛 고장은 아직도 하늘 남쪽 한 모퉁이에 있는데,
                     이제 다행히 사신으로 와서 노니네.” 하였다.


사백년전장상가(四百年前將相家)
고려 장일(張鎰)의 시에,
                    “4백 년 동안 전 장상의 집,
                     다투어 누대(樓臺)를 지어 몇 번이나 웅장함을 자랑하였던고?
                     지금은 그 화려하던 것 누구에게 물으리. 
                     들 살구 산 복숭아가 꽃이슬에 우네.” 하였다.


최설출현재(崔薛出賢材)
민사평(閔思平)의 시에, 
                     “계림에 옛적 나라를 일으켰을 때 최씨와 설씨에 어진 인재 나왔네.
                      예악(禮樂)은 중국을 배워 성대하게 문채가 났네.
                      그 임금 고려에 국토를 바친 뒤로는, 분사(分司)로 막부(幕府) 열었네.
                      백성들은 다 어진 이의 후손이라, 큰 갓에 위의(威儀)가 의젓하구나.” 하였다.


고운사업속수가(孤雲事業屬誰家)
이달충(李達衷)의 시에,
                       “고운의 사업은 누구 집에 붙였는고?
                        영재(英材)를 손꼽아 보니 그다지 많지 않네.
                        익재(益齋)와 졸옹(拙翁)도 이미 다 가셨으니,
                        산천은 응당 다시 정화(精華)를 쌓고 있으리.하였다.


의관일천년(衣冠一千年)
정추(鄭樞)의 시에,
                       “궁성(宮省)이 50대에 걸쳐 있었고 의관(衣冠)은 1천 년이었네.
                        이제 영웅은 물이 바다로 흐르듯 문물(文物)은 풀만 하늘에 연했네.” 하였다.


연성탑묘조(連城塔廟稠)
이원굉(李元紘)의 시에,
                        “계림은 가장 큰 웅번(雄藩)으로 형승(形勝)이 남방에 으뜸일세.
                         땅에 가득히 집들이 번성하고, 성에 연달아 절들이 빽빽하네.” 하였다.


천년고국다유적(千年故國多遺跡)
김구용(金九容)이 권부윤(權府尹)을 전송하는 시에,
                       “계림의 나무빛이 바라보는 가운데 푸르렀는데, 
                        한 점 문성(文星)이 익성(翼星)으로 내렸네.
                        깃발의 그림자는 비꼈는데 봄날 따스하고 
                        노래 소리 은은한데 상서로운 구름 이네. 
                        천년 고국에 유적(遺跡)이 많고,
                        10년 전 놀던 벗 이별의 정이 슬프네. 
                        멀리 상상컨대, 의풍루(倚風樓) 위 달밤에,
                        한가로이 부는 옥피리에 맑은 여운(餘韻) 있으리.” 하였다.


개방오봉년(開邦五鳳年)

권근(權近)의 응제시(應制詩)에,
                        “그 옛날 혁거세(赫居世)는 한 나라 오봉(五鳳) 연간에 나라 창설했네.
                         천년의 긴 세월을 서로 전하다가, 치우쳐 있는 한 모퉁이 겨우 보전했네.
                         계림의 국토를 문득 바치고 송악(松嶽)의 하늘에 와서 조회했네.
                         면면히 이어오던 삼성(三姓)의 종사(宗祀)가 영원히 끊어지니 정말 가엾어라.” 하였다.


처처유허탑묘다(處處遺墟塔廟多)
김조(金銚)의 시에,
                         “고개 숙인 기장과 벼가 축축 늘어진 모두 농가(農家)인데,
                          유적지마다 절들이 많네.
                          오래된 나라 천년에 조시(朝市)가 변하였건만,
                          산 꽃은 여전히 봄을 차지했네.” 하였다.


동도성곽변촌가(東都城郭變村家)

박원형(朴元亨)의 시에,
                         “동도(東都)의 성곽(城郭)이 인가로 변했는데,
                          옥피리 한가로이 부노라니 봄 생각이 많구나.
                          옹기종기 오릉(五陵)에 거친 풀만 우거졌으니, 
                          천년의 지나간 일 모두가 아침 꽃이네.” 하였다.


기처제릉금완출(幾處諸陵金盌出)
성간(成侃)의 시에,
                         “민가의 절반이 절이로구나.
                          한 조각 석양에 옛뜻이 많다.
                          몇 곳의 여러 능에서 금그릇 나왔는고? 
                          들꽃과 우는 새는 그대로 봄이로구나.” 하였다.


유여초인관물화(留與樵人管物華)
성간의 시에,
                         “당일에는 성중에 몇 집이었던고?
                          연못과 누대 곳곳에 석양이 짙구나.
                          지금도 초목은 옛날 같은데,
                          나무꾼에 맡겨 경치를 관리하네.” 하였다.


오릉추초석양다(五陵秋草夕陽多)

윤자운(尹子雲)의 시에,
                          “신라가 남긴 터에 백성들 집이로다.
                           오릉(五陵)의 가을 풀에 석양이 짙구나.
                           아득한 지난 일 물을 곳 없어라.
                           울타리 아래 국화가 이슬에 젖었네.” 하였다.


적막천년왕사사(寂寞千年王謝事)

정효상의 시에,
                          “전생(前生)의 이 몸은 어느 곳이 내 집이었던고.
                           홀로 서 있노라니 아득하게 감회가 많구나.
                           천년 동안 왕씨(王氏)ㆍ사씨(謝氏) 일이 적막한데,
                           한가로이 옥피리 부노라니 여전히 호화롭네.” 하였다.


요학귀래구롱다(遼鶴歸來丘壟多)

노문(盧昐)의 시에,
                          “옛날의 봄 제비 누구 집에 들어가나? 
                           요동의 학이 돌아오매 무덤만 많구나.
                           다만 지금 사람들 일을 알아 
                           옥피리 한가로이 불어 운치를 희롱하네.” 하였다.


대올첨성석조홍(臺兀瞻星夕照紅)
최숙정(崔淑精)의 시에,
                           “계림의 누런 잎에 가을바람 일어나던 그때,
                            옥피리 소리 그치자 왕운(王運)이 끝났네. 
                            50대 전하던 성곽은 남았건만,
                            1천 년이 지난 뒤 조시(朝市)는 비었구나. 
                            포석정 허물어진 곳에 가을풀 우거지고,
                            첨성대 우뚝한데 석양이 붉네.
                            묵은 자취 완연하나 사람은 모두 갔는데, 
                            난간을 의지해 말없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내노라.” 하였다.


일대유민현자후(一代遺民賢者後)
권진(權軫)의 시에,
                          “한 시대의 유민(遺民)들 어진 이의 후손이요,
                           천년 묵은 성첩(城堞)은 제왕(帝王)의 궁전 터일세.” 하였다.


전당십만기증하(錢塘十萬氣蒸霞)
김담(金淡)의 시에,
                        “상마(桑麻)에 봄은 짙고 땅에 가득 민가인데,
                         전당의 십만 집들은 기운이 노을 지네. 
                         6년 동안 하는 일 없이 앉아 휘파람 부는 것 부끄러움 없으랴?
                         건 위의 푸른 하늘이 다만 얇은 비단 한 겹 차이나네.” 하였다.


첨성대상성초락(瞻星臺上星初落)
배환(裵桓)의 시에,
                          “첨성대 위에는 별이 처음 떨어지고,
                           반월성(半月城) 끝에는 달이 이미 기울었네.” 하였다.


성시인비초색한(城是人非草色閑)
이천년(李天年)의 시에,
                          “구름은 가고 새는 아득하고 여울 소리 오래 되니
                           성곽은 그대로나 백성은 아닌데, 풀빛만 한가롭네.” 하였다.


격계수죽오(隔溪脩竹塢)
박문우(朴文祐)의 자인현(慈仁縣) 시에,
                           “잎이 떨어지니 산 모습이 야위었고, 햇살이 비껴드니 난간이 밝네.
                            시내 건너 길다란 대숲둑에 개 짖는 소리 나니 인가(人家) 있나 보다.” 하였다.

십이영(十二詠)
계림령이(鷄林靈異)
서거정(徐居正)의 시에,
            “금계(金鷄)는 울고 나무는 푸르더니 
             9백 년 이래 잎이 모두 누렇네.
             박씨(朴氏)가 나라 열어 석씨(昔氏)에게 전하더니, 
             김씨 왕이 국토 바치니, 전왕(錢王) 같았네.
             삼성(三姓)이 다 쓰러진 일 마음에 슬프구나.
             눈앞의 여러 왕릉 이미 황폐해졌네.
             천고 영웅의 끝없는 한이
             엷은 연기 쇠잔한 풀에 다시 석양일세.” 하였다.
○ 어세겸(魚世謙)의 시에,
             “지나간 일 일찍이 늙은이에게 들었더니 웃으며 붓을 들고 술을 마시네. 
              닭이 울던 나무 아래 새 임금 나타났고, 까치가 울던 강가에 옛 임금 바뀌었네.
              백성들이 점점 많아지자 개 짖는 소리 서로 들렸는데 산천은 겨우 낭황(狼荒)을 기록하네.
              한번 송악의 솔이 푸르른 뒤부터 머리 돌리니 전조(前朝)가 또 석양이네.” 하였다.


오산기승(鼇山奇勝)
서거정의 시에,
              “동해 가의 금오산 조망이 좋건만, 풍류와 문물이 전날과는 다르네.
               깨어진 비석에 간혹 김생(金生)의 글씨 보이고, 옛절엔 일찍이 최치원의 시가 남아 있네.
               크고 넓던 저택들 터에 냉이만 우거졌고, 이름 난 동산들 주인 없어 끊어진 다리가 위태롭구나.
               봄 시름이 바다보다도 깊은데, 철적(鐵笛)은 그 누가 흥겹게 불고 있나?”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푸른 산과 바다가 서로 어울리니, 누가 금오(金鼇)를 보내어 한 시대를 상서롭게 하였던고?
              교목(喬木)은 연기를 띄고 옛 나라에 남았는데, 문인들은 망국을 탄식하는 모든 새 시를 짓세.
              부용(芙蓉)으로 쪼개 내었으니 종래에 명승인데, 원숭이들 기어올라 부르짖으니 바라보는 곳 위태롭네.
              산기슭에는 밤이나 낮이나 푸른 노을 덮였는데, 저녁 바람이 귀밑털에 부네.” 하였다.


포정감회(鮑亭感懷)
서거정의 시에,
         “포석정 앞에 말 세울 때 생각에 잠겨 옛일을 그리워하네.
          유상곡수(流觴曲水)하던 터는 여전히 남았건만, 정신없이 춤 추고 노래 부르던 일 이미 잘못되었네.
          주색에 빠지고서 망하지 않은 나라 없네. 강개(慷慨)한 마음 어찌 견딜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오릉(五陵)의 길 지나며 시를 읊노라니, 금성(金城)과 석보(石堡)에 모두 석양이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포석정 가에 해가 지는데, 들 해당화 주인 없이 절로 서로 의지했네.
           당년에 삼풍계(三風戒)를 살피지 않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만사가 틀어진 것 슬프구나.
           꽃이 물에 떨어지는 것 어쩔 수 없었으며, 하인의 푸른 옷 갈아 입고 술잔 치는 것 어찌 차마 하였나.
           이곳의 무궁한 한(恨) 곰곰이 생각하니, 우는 새 지는 석양을 원망하는 데 부치노라.” 하였다.


문천빙망(蚊川聘望)
서거정의 시에,
         “가다가 문천을 건너 딴 마을 지나가노라니, 옛 도읍 그리운 생각 이길 수 없구나.
          꾀꼬리 깊은 나무에서 우니 황금 갑옷 생각나고, 개구리 차가운 못에서 우니 옥문지(玉門池) 그립네.
          흰 젖이 솟았다는 말 황당한데 불교를 숭상했고, 황창 동자(黃昌童子)는 강개히 임금 원수 갚았다네.
          물이 흘러도 전조(前朝) 한을 씻지 못하니, 모름지기 북해의 술항아리시원히 씻어야겠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게으른 종과 파리한 말로 외로운 마을에 다달으니, 들풀과 숲 속의 꽃들은 제각기 번성하네.
적막하여 지난 일 물어볼 사람 없으니, 황량한 어느 곳이 궁궐이던고?
금오산에 달이 밝으니 새로운 한을 보태고, 문천에 비가 내리니 옛 원통함을 씻는구나.
눈에 가득한 강산 고금(古今)의 뜻, 말세 풍속을 누가 다시 태고(太古)로 돌릴꼬?” 하였다.


반월고성(半月古城)
서거정의 시에,
“반월성 머리에 날이 저물어 가는데, 먼 객의 생각이 더욱 처량하다.
푸른 빛 떠오르는 양산(楊山) 기슭에는 구름과 연기 흐릿하며,
누런 잎 떨어지는 시림(始林)에는 세월이 아득하다.
명활촌(明活村) 남쪽에는 구름이 아득하고,
흥륜사(興輪寺) 북쪽에는 풀이 우거졌다.
평생 동안 불우하니 어디에 쓰랴?
술동이 앞에서 곤드레 만드레 취하기나 할까.”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반월성 동쪽 일본(日本) 서쪽에, 광한전(廣寒殿) 바람과 이슬 더욱 차가우리.
예처(羿妻)의 영약(靈藥)은 지금 어디 있을꼬?
당명황(唐明皇)의 은교(銀橋), 자취도 아득하다.
빈 동산의 그윽한 새는 제멋대로 지저귀고,
옛 언덕의 꽃다운 풀은 한껏 우거졌네.
슬프다, 그때 피리 불고 노래하던 땅이
지금은 농가(農家) 벽 위의 흙이 되었구나.” 하였다.


첨성노대(瞻星老臺)
서거정의 시에,
“옛 대 덩그레 첨성이라는 유적이 의연히 반월성 가까이 있네.
땅도 야위고 하늘도 거칠어져 세월이 이미 오래인데,
바람에 꺾이고 비에 깎여서 형세가 기울어졌네.
외로운 산에 지는 해 금선(金仙)의 부처 그림자요,
옛 성에는 가을을 슬퍼하는 옥피리 소리로다.
삼성(三姓)의 천년도 일찍이 한 순간이런가.
올라가 바라보노라니 더욱 마음 슬프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태사(太史)가 천문(天文)을 보아 뭇별을 살피던 곳,
높은 대 백 척(百尺)이나 되는 대 층성(層城)보다 높이 솟았네.
하늘 한 번 바라보니 재앙ㆍ상서 나타나,
마침내 황도(黃道)에 일월(日月) 기울어진 것이 슬프구나.
여전히 금오산 있어 아침마다 그림자 보내는데,
다시는 밤에 소리 전하던 옥루(玉漏)는 없어졌구나.
부디 올라가서 천문을 보지 말라.
옛 나라가 마음을 슬프게 하네.” 하였다.


분황폐사(芬皇廢寺)
서거정의 시에,
“분황사(芬皇寺)가 황룡사(黃龍寺)와 마주 있으니 천년 옛터에 풀만 저대로 새롭구나.
흰 탑은 우뚝하여 손을 부르는 듯한데, 푸른 산은 말이 없어 사람을 시름하게 하네.
전삼(前三)의 말 아는 중 없는데, 속절없이 장륙상(丈六像)만 남았네.
비로소 민가의 반은 절이던 것 알겠구나. 법흥왕(法興王) 어느 대(代)가 요진(姚秦)과 같았던고?”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옛절에 놀러 오니 중이 예스럽지 않고,
신라 천년의 지난 일이 도리어 새롭구나.
궁전터는 남았는데 농부들이 차지했고,
산하는 주인 없이 진인(眞人)에게 귀속되었네.
외로운 탑은 이미 앞ㆍ뒷면이 허물어졌는데,
늙은 소나무는 여전히 반쪽이 남았구나.
1천 함의 불경은 법사(法師)들만 괴롭혔으니,
백 가지 계책이 어찌 한 요진(姚秦)을 보호하랴?” 하였다.


영묘구찰(靈妙舊刹)
서거정의 시에,
“옛 절이 높다랗게 하늘에 닿았는데,
천년의 지나간 일 너무 처량하다.
돌 감실(龕室)은 퇴락하여 그윽한 길에 묻혔는데,
구리쇠 방울 뎅그랑 하고 석양에 운다.
옛 노인들은 지금까지도 여왕을 이야기하고,
옛 종은 여전히 당 나라 황실 기억하네.
자그마한 비석 어루만지며 잠깐 섰노라니,
벗겨지고 이끼 끼어 글자가 반은 거칠어졌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뜰에 가득한 소나무ㆍ전나무가 새벽에 푸른데,
단풍잎은 사람을 맞이하여 서늘함을 보내주네.
당대의 예쁜 꽃은 진정 복지(福地)러니,
백년 동안 가을 풀은 석양이네.
귀신이 함께 보호하여 높은 전각(殿閣) 남았고,
용상(龍象)이 다투어 나아가 부처님을 받드네.
남아 있는 감실로 여왕을 자랑하지 말라,
옛 도읍의 종묘ㆍ사직에 이미 잡초가 우거졌다.” 하였다.


오릉비조(五陵悲弔)
서거정의 시에,
“서라벌 천년에 왕기(王氣)가 사라지니,
오릉(五陵) 깊은 곳에서 전조(前朝)를 조상한다.
말이 울고 용이 낳았다는 일찍이 황당하고 괴이한 작포(鵲浦)의 계림(鷄林)이 모두 적막하네.
옥대(玉帶)라는 보물은 금궤와 함께 없어졌고,
동타(銅駝)의 그림자는 돌양[石羊]과 함께 흔들리네.
다시는 치병(齒餠)으로 왕위를 전할 수 없고,
해마다 봄 나무에 백로(伯勞)만 우는구나.”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날 저무니 길가던 사람 혼(魂)이 녹아나는데,
슬픈 바람 급히 일어나니 아침 서리 차구나.
왕후(王侯)가 종자 있어 묘(墓)가 많건만,
혼백이 갈 곳 없어 허공으로 사라졌네.
누워 있는 돌기린은 속절없이 비참하구나.
내 마음 달아 놓은 깃발처럼 흔들리네.
슬프다, 삼성(三姓)이 모두 함께 진토(塵土)되었는데,
홍애(洪厓)의 어깨 치고 이로(二勞)를 지났으면.” 하였다.


남정청상(南亭淸賞)
서거정의 시에,
 “성곽과 백성들이 맞는가 아닌가. 난간에 기대어 호탕하게 휘파람 불며 돌아가기 잊었네.
알영전(閼英殿) 속에는 용(龍)이 응당 떠났으리. 탈해(脫解)가 나온 바닷가에는 까치도 안 보이네.
나정(蘿井)의 나무 그늘은 예전대로 어두컴컴하고, 죽장릉(竹長陵)의 죽순은 지금도 통통하구나.
슬프다, 당시 번화하던 땅에, 천지가 무정하여 몇 번이나 석양이런고.”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옛 나라의 번화한 일 이미 다 글렀구나. 다만 시인(詩人)들이 나귀 타고 지나가네.
세월 오래되니 동해(東海)도 도리어 얕아진 듯, 남정(南亭)에 바람 부드러워 오히려 기댈 만하구나.
양지바른 언덕에 풀이 우거지니 누런 송아지 건장하고, 꽃이 떠 있는 봄물에는 백어(白魚)가 통통하네.
산천이 이러하니 모름지기 즐길지어다. 어찌 이 정자에 올라서 지는 해를 한탄하랴?” 하였다.


문옥적성(聞玉笛聲)
서거정의 시에,
“고국(故國)의 흥망을 생각하노라니 웃음 새롭구나. 그때의 세 가지 보물이 이제는 다 티끌 되었네.
금수레 타고 스스로 항복한 임금 누구던가? 옥피리 그대로 전하니 또 몇 해의 봄을 지났는고.
 옛 보물 아까우니 보존할 뿐이요, 풍류(風流)는 반드시 옛 사람 따를 것 없네.
무너진 성ㆍ지는 해에 붙지 말아라. 길이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수건을 적시게 하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금오산에 달이 밝아 천기(天氣)가 새로운데,
옥피리 한 곡조에 들보의 티끌이 움직이네.
기름덩이 자른 듯한 윤택한 결은 멀리 곤강(崑崗 옥의 산지)을 떠난던 날이 상상되고,
음률을 고르니 때로 절류춘곡(折柳春曲) 들린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사라지니 귀모(鬼母)가 놀라고,
창해(滄海)에 구슬이 튀니 교인(鮫人)이 운다.
신라 왕도(王都)에 옛 물건이 많이 남지 않았으니,
이 물건 남겨 두어 빈왕(豳王)으로 하여금 건(巾)을 비스듬히 쓰고 듣게 하라.” 하였다.


과유신묘(過庾信墓)
서거정의 시에,
“유신의 무덤 앞에 석수(石獸)가 높직하니, 천년의 칼 기운이 아직도 기이하다.
윤건(綸巾)과 백우선(白羽扇)의 차림은 예전의 제갈량이 생각나고,
붉은 여지와 누런 파초후인(後人)의 생각 일으킨다.
시를 지어 장렬(壯烈)함을 노래하는 객은 있으나, 무덤 뚫고 요리(要離)에게 가까이 갈 사람없구나.
천관사(天官寺) 오래되니 지금 어디런고. 만고에 아름다운 여인, 이름이 전하네.” 하였다.
○ 어세겸의 시에,
“장군은 나라와 안위(安危)를 함께 하였으니, 일백 번 전장에서 매양 기이한 계책 냈네.
일어나 강한 인국(隣國) 멸하기를 엎드려 물건 줍는 듯이 하여, 길이 장사(壯士)로 하여금 추모하게 하네.
별이 머리 위에 이르게 한 것은 충렬(忠烈)로 인함이요, 칼이 허리에서 튀어오른 것은 난리(亂離) 때문이다.
석자(三尺)의 황량한 무덤에 술 한 잔 드리노니, 구원(九原)에서 이와 같이 반드시 서로 따르리라.하였다.

『신증』
칠영(七詠) 김종직(金宗直)의 시.
회소곡(會蘇曲)
“회소곡 회소곡 서풍이 넓은 뜰에 부니, 밝은 달이 화려한 집에 가득하네.
왕후가 윗자리에 앉아 물레를 돌리니, 육부(六部)의 여자들 대 떨기처럼 많네.
너의 광주리는 이미 찼는데, 내 광주리는 비었구나. 술 빚어 놓고 야유(揶揄)하고 웃으며 서로 농담한다.
한 지어미가 탄식하매 일천 집이 권장되니, 앉아서 사방으로 하여금 길쌈을 부지런히 하게 하네.
길쌈놀이가 비록 규중(閨中)의 예의는 잃었으나, 그래도 발하수(跋河水)에서 다투며 놀이하는 것 보다는 났네.” 하였다.


우식곡(憂息曲)
상체꽃 바람 따라 부상(扶桑)에 떨어지니,
부상 만리에 고래 물결 사납구나.
비록 서신이 있은들 누가 가져올 수 있으랴?
상체꽃 바람 따라 계림에 돌아오니,
계림의 봄빛이 쌍궐(雙闕)에 둘렀네.
우애의 즐거운 정 이렇게도 깊구나.” 하였다.


치술령(鵄述嶺)
“치술령 꼭대기에서 일본을 바라보니,
하늘에 닿은 고래 바다 끝이 없네.
낭군이 가실 때에 다만 손만 흔들더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끊어졌네.
길이 이별함이여, 죽은들 산들 어찌 서로 만날 때 있으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다가 문득 무창(武昌)의 돌로 되니,
열녀의 기운이 천추에 푸른 하늘을 찌르는구나.” 하였다.

 달도가(怛忉歌)
“놀라고 놀라고, 슬프고 슬프다. 임금이 하마터면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뻔하였네. 유소장막(流蘇帳幕) 속에 현학금(玄鶴琴) 거꾸러지니, 어여쁜 왕비 이에 해로(偕老)하기 어렵구나. 슬프고 놀랍도다. 슬프고 놀랍도다. 신물(神物)이 알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꼬? 신물이 알림이여. 나라 운수가 길도다.” 하였다.

양산가(陽山歌)
적국(敵國)이 큰 돼지가 되어 우리나라의 변경을 거듭 먹어 들어오니, 용맹스런 화랑도들 보국(報國)하느라 마음에 겨를 없었네. 창을 메고 처자와 하직하고, 샘물로 입 가시고 말린 밥을 씹었네. 적병이 밤에 성책(城柵)을 무찌르니, 씩씩한 혼백(魂魄)이 칼날 앞에 날아 흩어졌다네. 머리를 돌려 양산(陽山)의 구름을 바라보니, 무지개 빛 높이 뻗쳤구나. 슬프다. 네 명의 장부는 마침내 북방의 강한 사람이었네. 천추(千秋)에 귀웅(鬼雄)이 되어 서로 더불어 초장(椒漿)을 음미하리.” 하였다.

대악(碓樂)
“동쪽 집에서는 기장과 벼를 방아 찧고, 서쪽 집에서는 겨울 옷을 다듬이질하네. 동쪽 집 서쪽 집의 방아 소리ㆍ다듬이 소리들은 설 지낼 거리 풍부한데, 우리 집 움 속에는 곡식도 없고, 우리 집 상자에는 한 자의 명주도 없구나. 해져서 너덜너덜 늘어진 옷과 비름나물 국사발로도 영계기(榮啓期)의 즐거움 배 부르고 따뜻하였네. 조강지처(糟糠之妻)여 조강지처여, 부질없이 근심하지 말라.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니, 구한다고 될 것인가? 팔 베고 잠을 자도 지극한 맛 있는 것이니, 옛날 양홍(梁鴻)과 맹광(孟光)은 진정 좋은 배필이었네.하였다.

황창랑(黃昌郞)
“이러한 사람이여, 어려서 나라를 떠났도다. 키가 석 자도 안 되는 어린 사람이 어찌 그리도 씩씩하고 날랜고? 평생에 왕기(汪錡)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나라 위해 치욕 씻었으니 마음에 후회 없네. 칼날을 목에 겨누어도 다리도 떨지 않고, 칼날이 심장을 가리켜도 눈도 깜박이지 않았네. 공을 이루고는 태연히 춤을 그치고 가 버리니,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北海)를 뛰어 건너는 듯.” 하였다.

잡영

유호인(兪好仁)의 시에,
“외로운 신하 한 번 죽어 임금의 은혜 보답하니,
만리 부상(扶桑)에 한 나라의 절(節) 높았네.
치술봉 꼭대기의 세 길 되는 돌에는
수심 어린 구름이 여전히 망부(望夫)의 혼을 띠고 있네.” 하였다.
○ “8월 금성(金城)에 달이 정말 둥근데, 가늘고 가는 삼과 모시, 고움을 다투네. 회소곡(會蘇曲)이 슬프게 끊어졌지만 가배절(嘉俳節) 저녁에 양편의 모습이 아직도 보이는 듯하구나.” 하였다.
○ “남완(南阮) 누대에는 비단옷이 고운데, 봄바람에 너울너울 길이 걷는구나. 달 밝은 만호(萬戶)에는 다듬이 소리 싸늘하여 백결선생(百結先生)의 노래를 두드려 다하였네.” 하였다.
○ “하늘 흔들고 땅을 진동시키며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쓰러뜨렸고, 강산 정기 타서 만방에 우뚝 뛰어났었네. 부질없는 세상의 석양(石羊) 흥무왕(興武王)의 무덤이요, 가을바람 누런 잎 상서장(上書莊)이네.” 하였다.
동타(銅駝)가 가시밭에 있으니 서울도 틀렸구나. 번화한 홍진(紅塵) 이제는 파멸되었네. 천지가 백번 변하여 남은 것이 없는데, 금오산이 남아 있어 사면으로 푸르구나.” 하였다.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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