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 지방의 의병 전쟁이 전성기로 치닫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의병장들이 관군에 흡수 되지 않았고

아직 조정의 위력이 삼남에 와 닫지 않는 중에

경상도의 경주에도

의병이 나왔으니

의병장은 김호이고

전 훈련 봉사로 전쟁이 일어 나고 고니시와 가토의

대군이 경주를 스치고 지나가고 난 이후에

민심을 어루 만지고

의병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키니

7월 말에 이르러 하나의 번듯한 군대가 되었죠

의병 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권응수에 의하여 영천, 하양, 신령등지를 잃고

전방과 후방과의 병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대구-청도-밀양-양산에 대해서 군사를 두고

경주에는 약간의 병력을 상주하여

경주에 대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영천성을 잃은 연후에

왜는 경주마저 빼앗길 것을 염려하여

양산에 주둔하던 병사중 500을 경주로 보내게 되었죠

이에 김호는 일본군 500명이 양산을 출발하여

8월 1일에 언양에 도착했다는 첩보를 받고

경주에서 출발하여 적이 경주에 도달하기 전에 요격하기로 했죠

8월 2일 적을 요격하기로 하고

언양을 떠나던 의병 1400명은

선봉이 경주를 벗어나 노곡리에 이르렀을 때에

생각 보다 빨리 들어 온 적과 조우하였고

불시에 적을 만난 의병 선봉은 침착하게

함성을 지르며 적과 결전을 벌이게 되었죠

오히려 왜적이 당황하여 골짜기로 도망치니

의병들은 지름길로 높은 지대를 선점하여

높은 곳에서 돌과 활을 날리고

뒤 늦게 도착한 의병의 본대가 뒤돌아 가서 퇴로를 차단하니

왜는 골짜기에 갖힌 체 의병에게 하루 종일 죽으니

운 좋게 살아 남은 왜 수십명 만이

경주 방향으로 도주하여 경주성에

도착하여 노곡리에서 응원군 전원이 죽은 사실을 알리게 되었죠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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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정식 우리가 지켜요"…식혜골 '우범식당'

400 여년 된 고가옥에서 신화를 품은 달빛을 받으며, 꾸민 맛을 전혀 내지 않아 소박하면서도 격조높은 ‘경주 한정식’을 즐긴다면?물론 잊지못할 가을추억을 남는다. 지난 9일 경주 출장을 갔다가 뜻 밖에도 4백년 묵은 오래된 민가에서 경주 반가 전통식을 만났다. 문화와 맛 그리고 솜씨가 어우러진 현장은 이런게 바로 관광객을 불어들이는 핵심 요소이며, 우리 문화를 살리고 경주가 먹고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경주 IC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오릉 인근 탑동 식혜골에 있는 세 자매가 꾸려가는 우범식당. 이 집은 경주 초입에 있으면서도 도시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숲에 둘러싸여있는데다 이웃에 인간문화재(전통자수 부문, 김혜자)가 살고 있고, 밤만 되면 억새 사이로 휘영청 달이 뜨는 그림같은 풍경 속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신라시대 천제사라는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 지어진 이 집(중요민속자료 34호)은 임란 때 큰 공을 세웠던 부산첨사 김호 장군의 생가로 경주 시내 개인 가옥으로는 가장 오래 됐다. 집 마당에는 신라 우물에서 아직도 물이 샘솟아 두레박으로 퍼쓴다. 물은 아주 맑고 차지만 오염을 우려해서 식수로는 쓰지 않는다.

“친정집을 오래 비워두기 뭣해서 세 자매가 의기투합했어요. 애들도 어지간히 컸으니 집도 지킬 겸, 어릴때 늘 손님으로 북적이던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그 음식들도 해보고 싶었어요.”

우범식당을 꾸려가는 김순화(50) 필화(48) 미화(39) 자매의 철칙은 즉석에서 자연의 맛을 내는 것이다. 재료를 준비해두기는 하지만 만들어두지는 않는다. 뭉긋하게 조려야 할 것은 뭉긋하게, 빨리 해내야할 음식은 빨리 즉석에서 해내야 고유한 맛이 변하지 않지요.

“친정 엄마는 늘 재료 자체의 맛을 강조하셨어요. 무침이라면 나물의 맛을 살려야지 마늘 등 양념으로 뒤범벅시키면 안된다고 그러셨어요. ”

이날 나온 정식에는 연잎 구절판, 더덕선, 야채샐러드, 모시 부꾸미, 호박전, 새우구이, 떡갈비, 북어채 등 9가지가 나왔다. 연잎 구절판의 밀전병은 백련잎을 써서 연두빛이었다. 연잎이 없을 때는 인디언 핑크색을 내는 복분자 엑기스, 자주빛이 되는 소엽 등을 갈아서 짜낸 즙을 반죽하여 쓴다. 까무스럼한 모시 부꾸미, 콩 참깨 등 곡물소스로 맛을 낸 야채 샐러드, 눈보푸라기 처럼 곱게 피운 북어채, 소금에 약간 절인 생더덕의 물기를 짜고 칼집을 넣어 말갛게 드러낸 더덕선 등이 인상적이었다.

“옛 여인들의 지혜가 놀랍지 않습니까. 그 시절 우리가 흔히 먹던 그 음식이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좋은 웰빙음식이잖아요. 이런 음식문화, 주거문화, 생활문화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고 살려나갔으면 하는 바람 뿐이죠. 저희 세 자매가 영원히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최미화 편집위원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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