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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0 이스라엘은 침략전쟁을 즉각 중단하고 철수하라.
     
이글을 쓰기 전 블로그 글을 뒤져보니 2006년 7월에도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는 무장 테러단체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목의 레바논 침공이었다. (
http://barkdal.tistory.com/510)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에 대해 유엔 총회에서 수도 없이 중지권고안, 제재안이 가결되었으나 항상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현재 이스라엘이 마치 화성 제암리 사건을 방불하듯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하며 침략행위를 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규탄의 목소리가 크지만  이스라엘의 2월 총선을 앞두고 강경입장의 국민표를 결집하려는 측면이 분명 있으며 팔레스타인 역시 총선을 앞고 있어 해결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들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야 그렇다고 치고 새로운 희망의 메세지를 보여주며 중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 기대를 모은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이해와 기억을 돕기 위해 먼저 중동전쟁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 보자.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전쟁협력을 조건으로 아랍민족과(맥마흔 선언) 유대인(밸푸어 선언) 양자에게 각각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이중 플레이를 한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의 싹은 잉태되었으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후 팔레스타인 인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랍민족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유엔은 인구 300만의 팔레스타인에게 영토의 1/3, 인구 60만명의 유대인에게 영토의 2/3를 주는 분할 국가 수립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이스라엘의 건국과 동시에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였으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난민으로 내쫓겨났다. 
1956년 일어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그때까지 영국 지배하에 놓여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시키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였고, 이를 틈타 이스라엘 역시 이집트를 공격하여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차지하였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은 시리아 이집트가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 아랍국가와 함께 이스라엘 군사 공격을 준비하던 중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불과 6일만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 등 이스라엘 면적의 5배나 되는 땅을 점령하였다.
1973년 이집트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제4차 중동전쟁은 유엔군이 개입하여 양측이 휴전을 함으로써 끝이났다. 이후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로부터 철수하고 평화 관계를 맺었다.  제4차 중동전쟁 중 석유수출기구가 석유의 무기화를 내세워 석유파동을 일으키며 자원민족주의가 대두하기도 하였다. 

 네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는 가운데 유엔은 총회의 결의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과 독립요구권, 분쟁 당사자로서의 지위 등을 인정하였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 미국의 전폭적인인 지원을 받아 압도적인 공군력의 우세로 네차례의 중동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점령한 동예루살렘지역과 가자지구, 골란고원 등을 일방적으로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켜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가자지역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으로 1949년 휴전협정으로 이집트에 편입되었다가 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994년 카이로 협정 등으로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가자지구 및 예리코 지역(요르단강 서안의 요르단의 영토였음)에서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출범하였다. 1998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와이협정을 맺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을 양도하고 팔레스타인은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고 약속함으로서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데 반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및 수자원 확보에 필요한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를  계속 지배하겠다고 하여 분쟁의 불씨는 계속 남았다.
또 이스라엘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의 입장차이가 있고 팔레스타인측에도 아라파트가 이끌던 온건파(파타계열)과 1988년 출범하여 무장항쟁을 강조하는 하마스를 주축으로 한 강경파간의 갈등이 계속 있다. 특히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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