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덕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1.23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9)


《대동지지(大東地志)》

【연혁】
태종(太宗) 15년에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 영을 부(府)에 두었다 절제사로서 부윤(府尹)을 겸했다. 17년에 영(營)을 울산(蔚山)으로 옮겼고, 세조(世祖) 12년에 진(鎭)을 두었다 열 읍내(邑內)를 관장하였으며, 동래(東萊)는 지금 독진(獨鎭)이 되었다. 선조(宣祖) 25년에 좌도관찰사영(左道觀察使營)을 두었다가 이듬해 성주(星州)로 옮겼다 대구조에 상세하다. 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文獻備考》

【방면】 동면(東面) 30리, 서면 30리, 남면 40리, 천북(川北) 동북쪽으로 20리. 강동(江東) 북쪽으로 40리. 강서면 북쪽으로 30리. 북안곡(北安谷) 본래 북안곡의 부곡(部曲)이었는데, 영천(永川) 동남쪽 경계에 넘어 들어가 있다. 서쪽으로 50리. 기계(杞溪) 북쪽으로 60리. 신광(神光) 북쪽으로 70리. 죽장(竹長) 북쪽으로 1백 리. 동해(東海) 동쪽으로 50리. 외방(外方) 동남쪽으로 40리. 현곡(見谷) 서쪽으로 20리. 산내(山內) 서쪽으로 60리. 남로동(南路東) 남쪽으로 40리. 남로서 남쪽으로 50리. 남도(南道)ㆍ금오(金鰲).
○ 성법이(省法伊) 부곡 북쪽으로 50리. 팔조(八助)는 동쪽 45리, 대포(大庖)ㆍ대창(大昌)ㆍ남안곡(南安谷)은 서쪽으로 45리, 근곡(根谷)은 안강(安康) 서남쪽으로 5리, 도계(桃界)ㆍ호명(虎鳴)의 부곡은 안강현의 동남쪽 7리, 호촌(虎村)은 신광현(神光縣)의 동남쪽으로 5리에 있다. 이 이상은 모두 부곡이다.

【영아】
후영(後營) 효종(孝宗) 8년에 세웠다.
○ 후영장 겸 포토사(捕討使) 1인.
○ 경주ㆍ울산ㆍ흥해(興海)ㆍ영일(迎日)ㆍ장기(長鬐)ㆍ언양(彦陽) 등 읍(邑)이 소속되었다.

○ 좌병영(左兵營)
 태종 15년에 영(營)을 부(府)의 동남쪽 20여 리에 있는 토을마리(吐乙磨里)에 설치하였다. 병사(兵使)로써 부윤을 겸하였다가 17년에 영을 울상부로 옮겼다.

【진보】 혁폐
감포진(甘浦鎭)
동남쪽 75리의 바닷가이다. 지금 울상부 동진(東津)의 고현(古縣)땅에 소속되었다. 중종(中宗) 7년에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7백 36척이고 우물 네 개가 있다. 수군(水軍) 만호(萬戶)를 두었다. 선조 25년에 동래로 옮겼다.
하서지목책(下西知木柵)
동쪽으로 60리 되는 곳에 있는데, 우물 한 개와 못[池]이 두 군데가 있다.

【창고】 창(倉)은 넷 읍내에 있다. 신광창(神光倉) ㆍ기계창(杞溪倉) ㆍ죽장창(竹長倉) ㆍ안강창(安康倉) 각각 고현(古縣)에 있다. 의곡창(義谷倉) ㆍ잉보창(仍甫倉) 각각 그 역(驛)에 있다. 동창(東倉)ㆍ 형창(兄倉) ㆍ달창(達倉).

【교량】 광제원교(廣濟院橋) 굴연천(掘淵川)에 있다.

【토산】 수정(水精)ㆍ화반석(花班石)ㆍ닥[楮]ㆍ감[枾].

【묘전】
집경전(集慶殿)
 본조 세종조(世宗朝)에 세웠다. 태조(太祖)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고 참봉(參奉) 2명을 두었다. 후에 강릉부에 옮겨 봉안하였는데 불타버렸다.
숭덕전(崇德殿)
부(府)의 남쪽 월남리(月南里)에 있다. 신라 남해왕(南解王) 3년에 시조묘(始祖廟)로 세웠다가 고려 때 없어졌다. 본조 세종 11년에 신라 시조묘로 세워, 해마다 봄ㆍ 가을에 향(香)을 피우고 제사로써 빌었다. 경종(景宗) 3년에 ‘숭덕전’이라고 사액하였다. 영종(英宗) 28년에 비석을 세우고 대제학(大提學) 조관빈(趙觀彬)이 비문을 지었다. 신라 시조 성(姓)은 박씨(朴氏)이며 한(漢) 나라 오봉(五鳳) 원년 갑자에 나라를 세웠다.
○ 참봉이 1명인데, 박씨 가운데서 뽑았었다.

【사원】
서악서원(西岳書院)
명종(明宗) 신유년에 세웠으며, 인조(仁祖) 계해년에 사액하였다. 설총(薛聰) 문묘조(文廟條)에 보라. 김유신(金庾信) 김해(金海) 사람인데, 벼슬은 태대서발한 평양군 개국공 추봉 흥무왕(太大舒發翰平壤郡開國公追封興武王)이다. 최치원(崔致遠) 문묘조에 보라.
옥산서원(玉山書院)
선조 계유년에 세웠으며 갑술년에 사액하였다. 이언적(李彦迪) 문묘조에 보라.
숭렬사(崇烈祠)
숙종 경진년에 세웠으며 신묘년에 사액하였다. 최진립(崔震立) 자(字)는 사건(士建)이요, 호(號)는 잠와(潛窩)이며 경주인이다. 인조 병자년에 공주 영장(公州營長)으로써 전사하였으며, 벼슬은 공조 참판(工曹參判)이었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Posted by 상운(祥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