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
반과학적 정부 아래서 사는 두려움 / 김상종
한겨레
»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260억여원을 들여, 우주여행자를 보낸 나라에 끼었지만 우리는 비과학적인 정책 결정으로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해 있다. 국민 건강을 내팽개치고 미국 축산업자의 이익을 위해 검역주권을 포기한 이명박 정부의 사례를 들어, 미국은 쇠고기를 수입해 가는 다른 나라에도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인간 광우병에 걸릴 위험성이 현실로 다가온 사실에 더해 국제적인 봉 노릇마저 자처하게 된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협상타결 소식에 박수를 쳤고,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는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하였다. 이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좋아하며 소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소비자인 국민은 걱정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며칠 전 미국 버지니아에서 인간 광우병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죽은 22살의 젊은 여성은 외국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 미국 안에서 옮은 게 분명하다. 영국에서 3년을 앓다가 지난해 인간 광우병으로 죽은 20대 젊은 여성은 평소 햄버거를 별로 먹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채식주의자까지도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 광우병 발생이 진행형임을 분명히해 준다.
광우병 위험물질로 지정된 부위가 아닌 살코기나 쇠뼈 가공물질인 의약품·화장품을 통해서도 옮을 수 있다거나, 최근 영국에서 사망한 30대 여인은 새로운 유전자 변종을 보여 신종 인간 광우병의 출현이 우려되는데도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 2천마리 중 한 마리만 광우병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형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어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도 가장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소비자인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을 애써 무시하고 이제는 소비자 선택이라고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미 폐기처분 했어야 할 대운하 사업도 역시 ‘비과학적’ 억지로 버티고 있다. 대운하 사업은 구체적인 내용과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허구성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마다 말바꾸기와 억지로 일관하고 있다. 초기에 대운하 사업을 이끌던 류우익 대통령실장이나 곽승준 수석비서관, 추부길 비서관 같은 정권 실세들은 빠지고 이제는 박재광 교수와 박석순 교수 같은 ‘만물박사’들에게 맡기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게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경제성 평가부터 물류문제, 관광사업, 지역개발, 생태계 관리, 수자원 관리 분야까지 나서서 비과학적 주장을 펴게 하며 뒤에 숨어서 대운하 사업의 운명 연장과 기사회생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정책의 결정은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둔 합리적 판단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거론하기에도 진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인 원리가 10년을 준비하였다는 정권, 15년을 준비하였다는 사업에서는 실종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소비자 몫이란다. 학교급식, 구내식당, 군대급식, 동네식당, 라면수프, 의약품, 화장품까지 조심해야 될 게 너무 많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소비자에게 알아서 하라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서민일수록 그 고민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렵다. 과학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비과학적 정책결정을 하는 이명박 정부가 두렵고, 그 피해를 몽땅 받을 서민들의 미래는 더 두렵다.
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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