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15면 기사 에서  <파란색 글씨를 누르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분인용했습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노 전 대통령 치세 때 참여민주주의가 만개해 시민들은 민주주의 성취를 당연하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민주주의의 성취’로 보였던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기조, 신권위주의로의 복귀, 소수 기득권 세력을 위한 통치에 대한 광범위한 실망 내지 불만이 2008년 (촛불시위로) 1차 폭발했고 2차적으로 이 추모 열기 속에 내연(內燃)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자칫 폭발할 수 있어요. 현 정부가 환골탈태해 상처 입은 시민들의 마음을 포용하지 않으면 <삼국지>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패주하게 만들 듯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패주케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가능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노무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 노무현, 인간으로서 노무현,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이 있었어요. 정책 입안·결정권자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논란은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탈권위나 균형발전, 화해·포용정책은 긍정적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법안 등은 문제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은 가장 서민적·탈권위적인 지도자였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노무현은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서거를 통해 인간 및 시대정신으로서 노무현을 새롭게 발견했기에 추모 열기가 커졌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의 대비 속에서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어요.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대비해 민주적·자유적이고, 사회적 약자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였다는 걸 재발견한 겁니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저는 한국 민중의 건강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계에 비해 최영에게 더 애정이 많은 것처럼 한국 민중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노무현의 정책에 대해 다 찬성하지 않지만 그의 실패, 좌절, 자살로 끝난 비운을 자기의 억눌린 부분과 동일시하는 겁니다. 조롱당한 노무현의 모습에서 삶이 조롱당하는 민중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거죠. 분향소 앞에서의 슬픔은 노무현에 대한 슬픔인 동시에 소통할 길 없고 억울한 일을 풀 길 없는 사람들의 갑갑함의 동일시라고 생각합니다.

<중간 생략>

윤평중=칭찬하고 격려하는 문화, 적이 아니라 경쟁자로서 인정하고 기를 북돋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손석춘=기득권 세력인 검찰과 신문의 책임이 있습니다. 검찰은 확인되지 않은 수사 결과를 흘렸고 신문은 그걸 바탕으로 조롱을 일삼았습니다. 지금 비극적 자살 앞에서도 검찰로 대표되는 이명박 권력기구는 성찰의 모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진보세력도 노무현의 실패에 대한 차분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김호기=지난주 토요일 이후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추모 열기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시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차분히 평가해서 사회 발전의 새로운 자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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