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만유 기자의 글입니다. 

문경시, 유교문화권관광개발사업 추진 이유로 산성 허물어


 고모산성은 길이가 1256m로 5세기경(470년)에 축성된 산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성이라는 보은의 삼년산성과 축조방법이나 시기가 비슷하고 신라가 한강 일대로 진출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한 산성이라고 하네요.
자세한 기록은 원문에서 보시고 충격적인 사진만 인용합니다.

  
1530년 전에 정교하게 쌓은 성이 보이나 이 곳을 다 허문다고 함.
ⓒ 이만유
  
굴착기가 마구 허물고 있다.
ⓒ 이만유
 

유교문화권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고모산성성벽정비사업에 수십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이렇게 성벽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처럼 생뚱맞은 모습으로 복원한다고 하네요.  

  
전반부가 이미 정비된 곳이고 파헤쳐진 부분이 이번에 추진하는 사업구간이다. 그 뒤로 옛 산성의 모습이 보인다.
ⓒ 이만유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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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4일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흑백 혼혈의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비록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실정과 극심한 경제위기에 힘입은 바가 컸지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검은 피부의 대통령(비록 흑백혼혈이지만)을 배출하였다는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크다. 
내일 모레인 1월 20일 오바마가 드디어 미국 44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유색인종으로 첫 대통령에 오른 데다 똑똑하고 패기있는 40대의 오바마에게 거는 기대가 아무래도 자못 클 수 밖에 없지만, 혹시라도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마음도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당내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내세운 것은 당내 화합의 대승적인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처음 내세운 외교정책의 상당한 수정 내지 변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이며, 미국에는 한 명의 대통령이 있을 뿐이라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사태에 침묵을 지킨 것도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이매뉴얼 의원을 비롯해 유대계 또는 친유대계 인사들의 오버마 주변에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오바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나아가 미국과 아랍(이슬람)세계와의 관계를 슬기롭게 제대로 재정립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우려가 한낱 기우가 되기를 바라며 소개한다. 

  박노자 글방 =>       오바마의 당선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


 취임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많은 사람의 기대에 발맞추어 미국을 새롭게 변화시키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기를 바란다.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 곧  유엔과 같은 국제 협력기구를 통해서라기보다 미국의 힘과 동맹국의 협조를 통해 패권을 추구하던 대외적 모습과 신자유주의 친기업정책으로 양극화를 가속화하던 모습 대신 세계 각국와 협조하고 평화적으로 국제 문제를 풀어나가며 미국 내부적으로도 오랜 갈등과 불협화음을 씻어나가는 변화와 화합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젊은 층과 서민의 강렬한 변화의 요구를 안고 출범하여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의 입장과 다르게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등을 밀어붙이며 자신을 반대했던 세력까지 포용하려 하다가 결국 자신의 지지 세력을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는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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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쓰기 전 블로그 글을 뒤져보니 2006년 7월에도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는 무장 테러단체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킨다는 명목의 레바논 침공이었다. (
http://barkdal.tistory.com/510)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에 대해 유엔 총회에서 수도 없이 중지권고안, 제재안이 가결되었으나 항상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현재 이스라엘이 마치 화성 제암리 사건을 방불하듯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하며 침략행위를 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규탄의 목소리가 크지만  이스라엘의 2월 총선을 앞두고 강경입장의 국민표를 결집하려는 측면이 분명 있으며 팔레스타인 역시 총선을 앞고 있어 해결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들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야 그렇다고 치고 새로운 희망의 메세지를 보여주며 중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라 기대를 모은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이해와 기억을 돕기 위해 먼저 중동전쟁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 보자.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전쟁협력을 조건으로 아랍민족과(맥마흔 선언) 유대인(밸푸어 선언) 양자에게 각각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이중 플레이를 한 이후 팔레스타인 문제의 싹은 잉태되었으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후 팔레스타인 인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랍민족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유엔은 인구 300만의 팔레스타인에게 영토의 1/3, 인구 60만명의 유대인에게 영토의 2/3를 주는 분할 국가 수립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이스라엘의 건국과 동시에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였으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난민으로 내쫓겨났다. 
1956년 일어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은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그때까지 영국 지배하에 놓여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시키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였고, 이를 틈타 이스라엘 역시 이집트를 공격하여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차지하였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은 시리아 이집트가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 아랍국가와 함께 이스라엘 군사 공격을 준비하던 중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불과 6일만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 등 이스라엘 면적의 5배나 되는 땅을 점령하였다.
1973년 이집트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제4차 중동전쟁은 유엔군이 개입하여 양측이 휴전을 함으로써 끝이났다. 이후 1977년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로부터 철수하고 평화 관계를 맺었다.  제4차 중동전쟁 중 석유수출기구가 석유의 무기화를 내세워 석유파동을 일으키며 자원민족주의가 대두하기도 하였다. 

 네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는 가운데 유엔은 총회의 결의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과 독립요구권, 분쟁 당사자로서의 지위 등을 인정하였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 미국의 전폭적인인 지원을 받아 압도적인 공군력의 우세로 네차례의 중동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점령한 동예루살렘지역과 가자지구, 골란고원 등을 일방적으로 자신의 영토로 편입시켜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가자지역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으로 1949년 휴전협정으로 이집트에 편입되었다가 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994년 카이로 협정 등으로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가자지구 및 예리코 지역(요르단강 서안의 요르단의 영토였음)에서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출범하였다. 1998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와이협정을 맺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을 양도하고 팔레스타인은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고 약속함으로서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데 반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및 수자원 확보에 필요한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를  계속 지배하겠다고 하여 분쟁의 불씨는 계속 남았다.
또 이스라엘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의 입장차이가 있고 팔레스타인측에도 아라파트가 이끌던 온건파(파타계열)과 1988년 출범하여 무장항쟁을 강조하는 하마스를 주축으로 한 강경파간의 갈등이 계속 있다. 특히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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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유창선님의 블로그 글
미네르바 구속, 되로 주고 말로 받는 MB 정부
http://link.allblog.net/15831399/http://blog.ohmynews.com/yuchangseon/245141



댓글일보에 실린 운진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http://datgle.net/1425?srchid=BR1http%3A%2F%2Fdatgle.net%2F1425

검찰이 전격적으로 미네르바를 구속한데 대한 후폭풍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간에 알려진것과는 달리 미네르바는 30대의 젊은 논객이였습니다. 밝혀진 그의 신상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것은  네티즌, 언론의 후폭풍입니다.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이 전세계적으로 타전되어 논평이 되는가 하면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언론들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네티즌들은 수천개의 댓글을 쏟아내고 미네르바 구속에 대해 성토하고 있습니다.

한 언론이 주식이 3천포인트까지 오를것이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을 문제삼자 검찰은 이는 분석,예측에 속한다고 답할 정도였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언론 흐름이 형성되고 있으며 검찰은 허위사실을 유포했던 글이 구속사유가 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국내 네티즌  및  일부 언론사의 비판과 해외의 비아냥 거림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며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미네르바 열풍은 그의 구속과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을 듯 합니다. 미네르바 현상은 한국의 경제정책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미네르바 열풍이 형성된것은 그의 경제 논리, 무엇보다도 그의 경제 예측력이 적중되는 가운데 정부의 경제 정책에 실망한 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게 된것 입니다. 누구나 경제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해서 미네르바처럼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시대적 아이콘이된 미네르바를 구속하는 것은 국민의 정서를 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정부는 경제 정책 시스템에 대한 쇄신이 필요합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30살에 불과한 미네르바에 대한 신뢰가  경제정책 당국보다 높았다는 사실이 반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숙고하고 이를 반영할 때입니다.  경제 정책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신뢰입니다.이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올바른 경제정책을 수행해 갈 수 없습니다. 

정부는 미네르바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미네르바는 언론사 경제부 기자의 신분으로 그의 해박한 경제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듦니다.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다음(daum)과 싸이월드 네티즌들의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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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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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타임이 아시아판 최신호(12일자)에 아시아의  민주주의 퇴행의 사례로 한국의 난장국회를 표지에 실었다고 하네요. 
철학없는 대통령의 말 한디에 개처럼 순종하는 자들이 국회다수를 차지하여, 충분한 토론과 국민적 지지 획득의 절차 뿐만 아니라 국회 법통과 절차마저 어겨가며 어거지로 언론악법 등을 강행하려 하여 빚어진 일이니 이 무슨 나라 망신인가?
앞으로 또 얼마나 이런 치졸한 짓을 계속할련지, 세상을 살만큼 산 여당의 대표는 철이 없어도 유만부동이지 나라전체를 속도전의 공사판으로 만들자고 떠들지를 않나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나아질 기미는 커녕 더욱 절망적인데 정치모리배들의 추태는 눈시려워 못봐줄 지경이다.

://photo.media.daum.net/photogallery/politics/0812_assembly/view.html?photoid=3917&newsid=20090109202020405&p=segye
Posted by 상운(祥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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